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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자요, 그림 (종료) 118

잘자요,그림 ||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잘자요, 그림 이 꽃그늘 아래서 내 일생이 다 지나갈 것 같다. 기다리면서 서성거리면서 아니, 이미 다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기다리는 오분간 아카시아꽃 하얗게 흩날리는 이 그늘 아래서 어느새 나는 머리 희끗한 노파가 되고, 버스가 저 모퉁이를 돌아서 내 앞에 멈추면 여섯살배기가 뛰어내려 안기는 게 아니라 훤칠한 청년 하나 내게로 걸어올 것만 같다. 내가 늙은 만큼 그는 자라서 서로의 삶을 맞바꾼 듯 마주보겠지. 기다림 하나로도 깜박 지나가 버릴 生, 내가 늘 기다렸던 이자리에 그가 오래도록 돌아오지 않을 때쯤 너무 멀리 나가버린 그의 썰물을 향해 떨어지는 꽃잎, 또는 지나치는 버스를 향해 무어라 중얼거리면서 내 기다림을 완성하겠지. 중얼거리는 동안 꽃잎은 한 무더기 또 진다. 아, 저기 버스가 온..

잘자요,그림 || 마지막 몸부림

잘자요, 그림 남자가 턱을 치켜들었다. 그의 표정에서는 아무것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의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가 지시한 대로 발 부인은 바지를 허벅지까지 내린 다음 먼저 바지의 오른쪽 끝단을 붙잡고 얼어붙은 왼발을 빼냈다. 그러고는 다시 바지 오른쪽 가랑이에서 오른쪽 다리를 빼냈다. 그 사이에 남자는 자신의 투박한 신발로 그녀의 실내화를 끌어다가 흩어져 있던 얼음 덩어리 몇 개와 함께 물속으로 밀어 넣었다. 잠시 뒤 그가 다시 발 부인의 고르덴 바지, 스웨터, 속옷을 한꺼번에 얼음 구멍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다시 움켜쥐었다. 그 순간 갑자기 발 부인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건 의도적인 저항이 아니었다. 옷을 다 벗은 맨몸에서 나오는 이성적 반항도 아니었다. ..

잘자요,그림 || 쟤한테 말하지 못할 게 뭐야

잘자요, 그림 잠시 뒤 올리브가 발목을 반대로 꼬며 말했다. "아니, 내가 자기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늙은이이고, 편하게 말할 상대가 정말로 너밖에 없어서 말한 거야." "알겠어요." 신디가 말했다. "제가 곧 죽을 사람이니까 말해도 안전할 거라고 여기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쟤한테 말하지 못할 게 뭐야, 그러셨을 수도 있겠다고요." [햇빛] 중에서 /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잘자요, 그림 Çiftlik Köyü의 모스크, 1965 / 유안 어글로 The Mosque at Çiftlik Köyü, 1965, Euan Uglow 잘자요, 그림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Copyrightⓒ아트하트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뷰 를 친구 추가하시면 매일 오전 8시 예술명언 오후 10시 잘..

잘자요,그림 || 귓속이 늘 궁금했다

잘자요, 그림 귓속이 늘 궁금했다. 그 속에는 달팽이가 하나씩 산다고 들었다. 바깥 기척에 허기진 그가 저 쓸쓸한 길을 냈을 것이다. 길 끝에 입을 대고 근근이 당도하는 소리 몇낱으로 목을 축였을 것이다. 달팽이가 아니라 도적굴로 붙들려간 옛적 누이거나 평생 앞 못 보던 외조부의 골발이라고도 하지만, 부끄러운 저 구멍 너머에서는 누구건 달팽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 안에서 달팽이는 천년쯤을 기약하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고 한다. 귀가 죽고 귓속을 궁금해할 그 누구조차 사라진 뒤에도 길이 무너지고 모든 소리와 갈증이 다한 뒤에도 한없이 느린 배밀이로 오래오래 간다는 것이다. 망해버린 왕국의 포장처럼 네 개의 뿔을 고독하게 치켜들고 더듬더듬 먼 길을. 시 [달팽이] / 김사인 잘자요, 그림 자화상, 1966 /..

잘자요,그림 ||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건 사람도 아니다

잘자요, 그림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건 사람도 아니다. 냉장고 열쇠를 건네며, 혹은 냉장고에 자물쇠를 채우며 하는 유조 씨의 그말을 양은 밥을 먹어도 들었고 안 먹어도 들었으며 잘 때도 듣고 일어나서도 들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유조 씨의 잔소리가 시작되면 양은 중얼중얼 먹고 싶은 음식들을 왼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저히 그 시간을 견딜 수가 없다. [누가 뭐래도 하마] 중에서 / 김선재 잘자요, 그림 호숫가에 소녀, 1963, 밀턴 에브리 Girl by Lake, 1944, Milton Avery 잘자요, 그림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Copyrightⓒ아트하트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뷰 를 친구 추가하시면 매일 오전 8시 예술명언 오후 10시 잘자요, 그림이 배달됩니다...

잘자요,그림 || 다음. 다음이란 건 없어.

잘자요, 그림 다시 겨울의 끝 그 동네 앞을 가끔 지나가 보면 골목 입구 공터는 여전했다. 지난여름에 사람들이 버린 소파, 책장, 모니터 같은 것들을 실어내고 당장이라도 공사를 시작할 듯 포클레인 하나가 며칠 동안 정지해 있는 곳이다. 얼마 전 보니 그때보다 더 많은 쓰레기와 폐가구들이 쌓여 있었다. 공의 눈 밑이 떨리는 것도 여전했다. 다른 사람과 있을 때 그 증상이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이거나 외면하거나 했는데 타이밍이 어긋나 상대방이 보았다고 느끼면 극심한 분노가 치솟았다. ... 다음에 또 오자. 막 빠져나온 세차 기계를 되돌아보는 금희에게 무심코 말했을 때 그녀의 대답은 뜻밖에 단호했지. 다음. 다음이란 건 없어. [못] 중에서 / 정미경 잘자요, 그림 '청록색과 크림색의 배열'에 대한 ..

잘자요,그림 || 우리는 만난다

잘자요, 그림 우리는 만난다 그 안에 네가 있었다. 라이트가 쨍.하고 깨지는 순간, 너의 팔이 부서지고 흰 공이 너의 밖으로 아득하게 날아갔다. 나는 있는 힘껏 고개를 돌렸고 라이트에 눈이 멀었다. 그 안에 네가 있었고 주위는 조용했는데, 어디선가 비가 내리듯 바깥이 젖는 것 같았다. 거짓말처럼 푸른 잔디가 돋아났고 붉은 흙투성이 신발을 하고 너는 뛰고 있었다. 시 [우리는 만난다] / 하재연 잘자요, 그림 두 개의 빨간색 꽃병, 1987, 데이비드 호크니 Two Red Pots, 1987, David Hockney 잘자요, 그림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Copyrightⓒ아트하트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뷰 를 친구 추가하시면 매일 오전 8시 예술명언 오후 10시 잘자요, 그림이..

잘자요,그림 || 나는 부자가 될 거야

잘자요, 그림 나중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눈싸움을 시작했다. 그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웃었다. 미연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바람이 심장을 통과해서 지나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게 눈밭에 누워 한참 웃다가 마침내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나는 부자가 될 거야." 성재가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커다란 저택에 살면서 커다란 개를 키울 거야. 개를 가지는 게 어렸을 때부터 소원이었거든." [잉글리시 하운드 독] 중에서 / 정한아 잘자요, 그림 작은 질문, 2022, 앨런 피어스 A Small Ask, 2022, Alan Fears 잘자요, 그림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Copyrightⓒ아트하트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뷰 를 친구 추가하시면 매일 오전 8시 예술명언 오후 10시..

잘자요,그림 || 언젠가 나도 아파트 베란다에서쌀농사를 한번 지어볼까 보다

잘자요, 그림 언젠가 나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쌀농사를 한번 지어볼까 보다. 직접 지어 먹지 않더라도 매일 따뜻한 밥 한 그릇을 지어 함께 나눠 먹는 것은 아무래도 '미지근한' 사랑인 것 같다. 그 미지근함에 미움과 엉성함이, 무지와 오해가 조금씩 섞이더라도 말이다. [아주 작은 인간들이 말할 때] 중에서 / 이근화 잘자요, 그림 인테리어, 1930 / 로이 드 마이스트리 Interior, 1930, Leroy Leveson Laurent Joseph de Maistre 잘자요, 그림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Copyrightⓒ아트하트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뷰 를 친구 추가하시면 매일 오전 8시 예술명언 오후 10시 잘자요, 그림이 배달됩니다.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예술 •..

잘자요,그림 || 나의 말이 당도하기도 전에 흔들리던 눈빛

잘자요, 그림 그 사이에서 배꾼들은 불길한 미래를 미리 살아보는 것이다. 손을 잡았을 때 힘을 빼던 당신의 손아귀나 나의 말이 당도하기도 전에 흔들리던 눈빛 같은 것을 떠올리면, 풍어를 찾아 폭풍의 방향을 짐작하려고 등대같이 불을 켠 눈동자를 이해할 수 있다. 시 [첫사랑에 대한 소고] / 이현호 잘자요, 그림 색칠된 정물화, 1972 / 패트릭 콜필드 Coloured Still Life, 1972, Patrick Caulfield 잘자요, 그림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Copyrightⓒ아트하트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톡 뷰 를 친구 추가하시면 매일 오전 8시 예술명언 오후 10시 잘자요, 그림이 배달됩니다. 세상의 모든 예술 아트하트 예술 • 명화 • 디자인 • 전시회 • 아트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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