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자요, 그림
치료받을 때도 좀 아프지만, 의사는 다 적었는지 고개를 들고 또 코를 훌쩍거리더니, 사나흘은 아플 거니까, 진물도 날 거니까, 진통제를 처방해주겠다고 했다. 그때 하지 않겠다고 했어야 했다. 스포츠화 판 돈 중에 이만원은 난방비에 보태고 오만원은 저금에 보태려고 했는데, 그래서 이번달엔 삼십오만원을 저금하려고 했는데 얼어죽을 냉동치료로 칠만원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접수처에서 돈을 내는데 직원이 삼 주 후 오늘로 예약 잡을게요, 했다. 소희가 멀뚱멀뚱 쳐다보자, 삼 주 간격을 두고 적어도 대여섯 번은 꾸준히 냉동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병원을 나오는 내내 소희는 조금씩 불안해지고 신경이 곤두선다. 얼굴이 붉어지고 눈가가 이글이글 달아오른다. 뭔가 또 퍽 터질 것만 같다. 언니가 사라졌을 때도, 손톱이 깨졌을 때도, 소희는 이렇게 뭔가로 가득차서 터질 것 같았다. 무섭다. 소희를 이렇게 두면 안 되는데, 이렇게 혼자 나두면 안 되는데, 도대체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어쨌다고? 내가 뭐?? 내가 뭘? 뭘? 뭘? 소희는 작은 소리로 외치며 걷는다. 내가 뭘? 뭘? 뭘? 소리가 점점 커지면서 말끝이 날카롭게 솟구친다. 내가 뭘? 뭘? 뭘?
[손톱] 중에서 / 권여선
잘자요, 그림
정물화, 1954 / 조르지오 모란디
Still Life, 1954, Giorgio Morandi
잘자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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